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새로 온 사람이 물었다. 이건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기준이 무엇인지.
당연히 물어야 할 것들이었다. 문제는 내가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 기준이 아직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누가 결정하는지. 어디까지 자기가 판단해도 되는지. 하나하나 다 필요한 질문이었고, 그중 상당수가 답이 없었다.
기준은 어딘가에 정리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결정은 상황에 따라 바뀌었고, 예산과 일정과 사람의 기대가 겹쳤고, 책임의 경계는 매번 선명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기준이 생기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도 일은 굴러갔다. 문서에 적힌 절차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실무 판단이고 어디부터가 책임자의 결정인지. 이런 것들이 어디에도 적히지 않은 채로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새로 온 사람이 원한 것은 명확한 기준이었다. 마땅한 요구다. 그리고 나는 그 기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한쪽은 왜 더 명확하지 않은지 묻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그 명확함을 만드는 중이었다.
이 간극을 잘 다루지 못하면 업무의 문제가 관계의 문제가 된다. “왜 알려주지 않는가”와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는 서로를 향한 말이 되기 쉽다.
나는 그 간극을 설명으로 메우려 했다. 더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이 맥락을 풀어주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 될 일 아닌가 싶겠지만, 그 말은 자주 했다.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듣는 쪽에서 그 말은 상태 보고가 아니라 회피처럼 들린다. 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왜 아무도 정해주지 않느냐고, 더 단단해진 질문이 돌아온다. 정해지지 않은 일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그 반응을 조금은 이해한다. 새로 온 사람일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 오래 있던 사람은 정해지지 않은 자리를 암묵지로 메우며 다닐 수 있지만, 새로 온 사람에게는 메울 것이 없다. 같은 불확실함이 한쪽에게는 흐린 날씨 정도라면, 다른 한쪽에게는 바닥이 꺼진 자리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더 늘리는 쪽을 택했다. 정해진 것은 사정까지 붙여서 설명하고, 정해지지 않은 것은 임시로라도 내 선에서 기준을 만들어 건넸다. 상대가 물을 때마다, 그때그때.
이 방식은 당장은 통했다. 질문에는 답이 갔고, 일은 진행됐고, 갈등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퇴근한 뒤에도 다음 날 무엇을 어떤 순서로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도 일의 일부라고 여겼다.
지금 보면 그것은 설명이라기보다 대납이었다. 조직에 아직 없는 확실함을 내 시간과 친절로 대신 갚고 있었다. 그런 갚음은 개인의 몫이라서, 계속되면 소모된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원래 비어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일이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여기까지는 정해져 있다. 여기부터는 열려 있다. 정해질 때까지는 이렇게 해두자. 이 구분과 함께라면 새로 온 사람도 그 위에서 움직일 수 있다.
그 문장이 제값을 하려면, 정해지지 않은 상태가 그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 이 말은 정보가 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누군가의 빚이 된다.
요즘도 그 말을 할 일은 줄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 갚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정해져 있다는 것과, 언제쯤 다시 정해질지를 같이 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