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성을 견디는 능력

사람은 복잡성을 오래 견디기 어려워한다.

우리는 명쾌한 이야기를 원한다.

누가 맞았는지.
누가 틀렸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르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너무 많은 변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피곤하다.

그리고 단순화는 실제로 필요하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려하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요약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금은 보지 않을 것을 정하는 일은 판단의 일부다.

문제는 단순화가 도구가 아니라 세계관이 될 때 생긴다.

한 번의 결과로 과거 판단 전체를 심판하고, 한 번의 감정으로 관계 전체를 규정하고, 모순되는 정보는 버린다. 그렇게 하면 마음은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도구로 쓰는 단순화는 자기가 무엇을 접어두었는지 기억한다. 세계관이 된 단순화는 접어둔 것이 없다고 믿는다.

복잡성을 견딘다는 것은 그 차이를 잊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애매하게 둘 수는 없다. 상황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필요한 결정은 내려야 한다. 내 판단의 한계를 알고, 나중에 수정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지금 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한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업무는 늘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진행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도 않다.

현장에 가까운 사람은 구체적인 불편을 먼저 본다. 전체 결정을 맡은 사람은 예산과 일정, 다른 부서에 미칠 영향을 먼저 본다. 같은 결정도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쪽의 이야기든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화가 세계관이 되면 이 사실이 지워진다.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부분이 전체가 되고, 상대는 사정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틀린 사람이 된다.

그래서 실무에서 내가 붙들려고 하는 것은 빠른 결론보다, 지금 보이는 정보와 아직 보이지 않는 정보를 구분하는 일이다.

하지만 변수를 더 많이 본다고 해서 더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성급해 보이는 순간에도, 나는 결정을 늦추는 쪽으로 기울고 있을 수 있다.

복잡성을 견디는 능력은 모든 변수를 오래 붙드는 능력과 같지 않다. 무엇을 더 확인할지, 무엇은 지금 접어둘지, 언제 결정할지를 함께 정하는 능력에 가깝다.

너무 일찍 닫는 것과 끝내 닫지 않는 것은 반대 방향의 같은 실수일 수 있다.

복잡성을 견딘다는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잠시 접어두었는지 기억한 채 결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