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나는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틀렸다.
나는 그 시선이 중요해질 만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상대가 말을 걸면 친절하게 답했지만, 다음 대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가까워질 계기가 생겨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누구와도 나쁘지 않았고, 누구와도 특별히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 방식은 안전했다.
먼저 원하지 않으면 거절당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다가가지 않으면 관계를 혼자 착각할 일도 없다.
나는 이 안전을 독립성이라고 불렀다.
물론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딘다. 모든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오랫동안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관계가 필요하지 않아 혼자인 것과, 관계가 필요해졌을 때 생길 취약함을 피하려고 혼자인 것을.
그 차이는 내가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졌을 때 드러났다.
대화를 마친 뒤에는 내가 했던 말 한마디가 자꾸 떠올랐다. 너무 많이 말한 것은 아닌지, 관계를 실제보다 가깝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혼자 들떠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대화는 이미 끝났는데 내 안에서는 계속됐다.
반응이 조금만 모호해져도 해석은 나쁜 쪽으로 기울었다. 상대가 바빴을 가능성보다 내가 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먼저 떠올랐다. 별다른 뜻이 없는 침묵도 내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때 알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거절 자체가 아니었다. 거절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으로 판명되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원하면 ‘아쉬운 사람’이 된다.
먼저 움직이면 ‘혼자 들뜬 사람’이 된다.
상대의 호의를 잘못 읽으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내 안에서 이 셋은 거의 같은 인간이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상대의 거절을 무시하는 행동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다. 신나서 말을 많이 한 것과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채 나대는 것도 같은 방향에 놓여 있었다. 호의를 한 번 잘못 해석하는 순간, 나는 단순히 판단을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편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으로 판명될 것 같았다.
나는 행동 하나를 검토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경멸해온 인간형이 되었는지를 재판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원하는 쪽이 더 약한 쪽이라고 믿었다. 마음을 먼저 드러내는 순간 관계의 균형을 잃는다고 여겼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을 존엄과 거의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실수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과 상대의 경계를 무시하는 일을 같은 죄처럼 다뤘다.
그 재판에서 무죄로 남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됐다.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고, 관계를 기대하지 않고, 상대가 나를 선택하거나 거절해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 그러면 나는 언제나 침착하고 독립적이며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방식은 잘 작동했다. 나는 좀처럼 거절당하지 않았고, 관계를 혼자 착각해 민망해질 일도 적었다.
다만 상대에게 나를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은 만큼, 나를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으려다, 아무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될 가능성까지 막아두었다.
독립적이어서 혼자인 것과, 혼자인 상태에서만 독립적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는 전자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후자에 가까웠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 시선이 중요해지기 전에 먼저 물러났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관계가 갑자기 쉬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먼저 다가간 뒤에는 내가 한 말을 되짚고, 모호한 반응 앞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부터 찾는다.
다만 그 불안을 곧바로 나에 대한 판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원하고, 먼저 다가가고, 때로는 잘못 읽는다고 해서 내가 곧바로 그토록 경멸하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키려 했던 존엄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