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카페에서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오면 나는 그냥 마신다.
바꿔달라고 하지 않는다. 새로 만들어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다른 메뉴가 나와도 대개 그대로 먹는다.
점원이 먼저 알아채고 미안해할 때도 있다. 그때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참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별로 상관이 없다.
반드시 그 메뉴를 먹어야 했던 것도 아니고, 주문을 받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고, 그 정도 일로 누가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화가 나지 않으니 참을 것도 없다.
다만 이것이 관대함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이유에 “괜찮아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만드는 상황 자체가 싫다.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고, 그 자리의 공기를 바꾸고, 내가 그 원인이 되는 것이 싫다.
괜찮다는 감각과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대개 같이 온다. 그래서 나는 둘을 분리해본 적이 없다.
그 구분이 필요해진 적이 있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말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여기는 태도였다.
나는 그것이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말리는 쪽에 가까웠다. 그 사람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발화되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틀어막으려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내 안에 있던 것은 적절성이나 잘잘못 판단만은 아니었을 거다. 불편함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어떻게든 봉합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율이라고 불렀지만, 조율이라는 말이 정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사람을 보면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나도 저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싫은 것이 있으면 싫다고 말하고, 문제라고 생각하면 문제라고 하고, 필요한 것은 필요하다고 하는. 나는 그것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대체로 맞춰주는 쪽이었고, 맞춰주는 데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겼다.
한쪽은 너무 많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마 너무 적게 말해왔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낀다. 정말 상관없어서 넘기는 것과, 불편함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넘기는 것.
앞의 것은 그냥 두어도 된다. 잘못 나온 커피는 앞으로도 그냥 마실 것 같다.
뒤의 것은 한 번쯤 되짚어야 한다. 그때 넘어간 일이 나에게 정말 상관없는 일이었는지, 아니면 말하지 않는 편이 편해서 상관없다고 해둔 일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