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친절함은 시스템이 아니다
친절함은 필요하지만 시스템은 아니다. 구조가 떠받쳐야 친절함이 지속된다.
온보딩이 어려운 이유는 설명할 것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때로는 설명해야 할 기준 자체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새로 합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어디까지 하면 되나요.
기준은 무엇인가요.
누가 결정하나요.
어디까지 제가 판단해도 되나요.
모두 필요한 질문이다. 문제는 현장의 많은 일이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을 만큼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기준은 일의 바깥에 고정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처음부터 모든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결정은 상황에 따라 바뀌고, 예산과 일정과 사람의 기대가 겹친다. 책임의 경계도 매번 선명하지 않다.
어떤 선택은 당시에는 그나마 나은 판단이었지만, 나중에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일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어떤 일은 기준이 완전히 생기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조직에는 늘 암묵지가 있다. 문서에는 절차가 적혀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문서 밖에 있을 때가 많다.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확정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실무 판단이고 어디부터가 책임자의 결정인지. 이런 것은 매뉴얼만으로는 완전히 전수되지 않는다.
좋은 온보딩은 이 암묵지를 안전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새로 온 사람은 명확한 기준을 원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알려주는 사람은 종종 아직 기준이 만들어지는 과정 한가운데에 있다. 한쪽은 “왜 더 명확하지 않은가”라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지금은 명확히 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 간극을 잘 다루지 못하면, 업무의 문제가 관계의 문제가 된다.
나는 한동안 좋은 온보딩은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이 맥락을 풀어주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친절함은 필요하다. 하지만 친절함만으로는 시스템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이에서, 메시지에 답하기 전에 어떤 어휘를 고를지 오래 고민한 날들이 있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정보 전달이 될 수도 있고, 불필요한 긴장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하려 했고, 더 많은 맥락을 설명하려 했다. 때로는 정작 해야 할 판단보다 그 판단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런 방식은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계속 맥락을 해석하고, 모호함을 대신 견디고, 갈등을 흡수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퇴근 후에도 다음 날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말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그것도 일의 일부라고 여겼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것이 계속 필요하다면, 그건 개인의 성실함이 아니라 구조의 부재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기분 좋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아직 논의 중인 것과 이미 결정된 것을 구분해야 한다. 같이 고민할 부분과 실행해야 할 부분을 분리해야 한다. “의견을 듣고 싶다”와 “이 기준으로 진행해달라”는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의견은 필요하다. 질문도 필요하다.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 오히려 조직은 그런 것들이 없을 때 더 위험하다.
다만 의견은 판단 가능한 이유와 실행 가능한 대안의 형태로 정리될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불편함을 말하는 것과, 함께 판단할 수 있는 형태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감정의 표현에 머물 수 있지만, 후자는 일을 앞으로 움직인다.
온보딩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 온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이 정해져 있고, 무엇이 아직 열려 있으며, 무엇은 함께 판단해야 하고, 무엇은 정해진 방향대로 실행해야 하는지 구분해주는 일이다.
좋은 온보딩은 지식을 넘기는 일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함께 다루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친절함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람은 차갑고 정확한 지시만으로 잘 배울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맥락과 안전감이 필요하고, 질문해도 된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그러나 친절함이 모든 모호함을 대신 감당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절함이 구조를 대신하는 순간, 그 친절함은 언젠가 소진된다.
앞으로 나는 더 잘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더 명확히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절하지만 흐리지 않고, 배려하지만 책임의 경계를 놓치지 않는 사람.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모든 모호함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모호함을 말로 정리하는 사람.
친절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친절함은 시스템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협업에는 친절함만큼이나 구조가 필요하다.